디자이너를 위한 부정경쟁방지법 안내❸ 파목, 젠틀몬스터 사건 편
돌파전략 · 2026-08-26 · 펀더블 자금조달 인사이트
"디자인권을 미리 등록해 두지 않으면 교묘한 카피캣을 막을 수 없다?" 많은 디자이너가 절망하는 이 명제는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린 이야기**입니다. 현재 패션·디자인 업계를 가장 뜨겁게 달구고 있는 아이웨어 브랜드 간의 분쟁, '젠틀몬스터 vs 블루엘리펀트' 사건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명확한 해답이 나옵니다.
디자인권 없이 젠틀몬스터가 카피캣에 맞서는 법
언론은 연일 디자인 카피 논란을 보도하지만, 놀랍게도 젠틀몬스터는 문제가 된 **해당 안경의 디자인권을 애초에 등록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젠틀몬스터는 대체 어떤 무기를 쥐고 카피캣에 맞서고 있는 걸까요?
디자인 등록증이라는 방패가 없는 디자이너도 억울한 차용을 응징할 수 있는 최후의 보루, 부정경쟁방지법의 사각지대 조항에 대해 파헤쳐 보겠습니다.
디자인권 등록 없이 '부정경쟁방지법'으로 싸우는 진짜 이유
사각지대를 껴안는 최후의 법, '파목'의 정의
앞선 에피소드에서 살펴본 '자목(상품 형태가 갖춰진 날부터 3년 보호)'과 '가목(혼동 우려 및 영구 보호)'의 요건을 모두 빗겨 가는 교묘한 형태의 부당 행위들이 시장에는 존재합니다. 이러한 사각지대를 보완하고, 법의 테두리 밖에서 벌어지는 부당함을 껴안기 위해 존재하는 부정경쟁방지법의 마지막 보루가 바로 '파목'입니다.
부정경쟁방지법 제2조 제1호 파목 (요약) 타인의 상당한 투자나 노력으로 만들어진 성과 등을, 공정한 상거래 관행이나 경쟁 질서에 반하는 방법으로 자신의 영업을 위하여 무단으로 사용하여 타인의 경제적 이익을 침해하는 행위는 부정경쟁행위로 봅니다.
본 조항이 앞서 다룬 자목·가목과 구분되는 가장 큰 차이점은 다음 두 가지입니다.
형식적 기준이 아닌 '행위의 부당성' 자체를 평가합니다
상품의 형태가 얼마나 똑같은지, 혹은 소비자의 혼동 우려가 있는지를 따지는 엄격한 형식적 잣대에서 벗어나, 무단 차용 행위 자체가 전체적인 상도덕과 공정한 상거래 관행에 어긋나는지를 포괄적으로 바라봅니다.
형사 고소의 대상이 아닙니다
자목과 가목을 위반할 경우 형사 처벌까지 가능하지만, 파목 위반은 형사 고소의 대상이 아니며 오직 민사상 손해배상 및 침해금지청구 소송으로만 다툴 수 있습니다.
사례 1. 서울 연인 단팥빵 사건
파목의 성격을 가장 명확하게 보여주는 대표적 판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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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래비 매거진' 서울연인단팥빵 이미지
서울의 한 유명 단팥빵집 사장이 오랫동안 동고동락했던 직원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입니다. 해당 직원은 사장의 가게 바로 옆 점포에 동일한 콘셉트의 단팥빵집을 개업했습니다. 인테리어 분위기, 단팥빵의 만듦새와 진열 방식까지 빼닮아 있었으나, 가게 이름만 '서울 연인'에서 '누이'로 다르게 간판을 달았습니다.
'네이버 블로그' 서울누이단팥빵 가게 상호 이미지
당시 사장이 특허청에 등록해 둔 권리는 '상표권' 하나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상호(간판)가 달랐기에 상표권 침해를 묻기 어려웠습니다. 특정 상품 하나를 베낀 것이 아니라 사업의 콘셉트 전체를 차용한 것이라 '자목'을 적용하기도 난해했고, 상표가 확연히 달라 출처의 혼동 우려를 다투는 '가목'으로 가기에도 애매한 상황이었습니다.
대법원은 장고 끝에 결국 '파목'을 적용하여 사장의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사장이 오랜 기간 시행착오를 거치며 투자한 노력의 결과(독특한 인테리어, 사업 콘셉트, 제법 등)가 법이 보호해야 할 명백한 '성과물'에 해당한다고 보았습니다.
직원이라는 특수한 신뢰 관계 안에서 해당 노하우를 습득한 자가, 곧바로 옆 건물에서 동일한 영업을 시작한 행위는 '공정한 상거래 관행'에 정면으로 반한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사례 2. 에르메스 가방에 눈알이 붙은 사건
'법률 신문' 이미지
어느 국내 디자이너가 명품 브랜드 에르메스(Hermes)의 시그니처인 켈리백·버킨백과 동일한 실루엣의 가방을 제작한 뒤, 그 전면에 커다란 눈알 모양의 캐릭터를 부착하여 판매한 사건입니다.
일반적인 소비자가 커다란 눈알이 붙은 해당 가방을 보고 진짜 에르메스 제품으로 혼동할 가능성은 거의 없었습니다. 즉, 가목의 '혼동 행위' 요건이 성립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켈리백과 버킨백의 디자인은 출시된 지 수십 년이 훌쩍 지났으므로 자목의 '3년 보호' 기간도 진작에 끝난 상태였습니다.
그럼에도 법원은 파목을 근거로 에르메스의 권리를 인정했습니다. 에르메스가 오랜 세월에 걸쳐 막대한 자본과 노력을 투자해 구축해 놓은 디자인 자체의 고유한 식별 자산을, 아무런 합의 없이 차용하여 무단으로 자신의 영업에 끌어다 쓴 행위가 상거래 관행에 반한다고 본 것입니다.
파목은 이런 식으로 **엄격한 법리적 요건이 닿지 못하는 억울한 틈새**를 끌어안아 권리자를 보호합니다.
다시, 젠틀몬스터 vs 블루엘리펀트 사건으로 돌아와서
'KBS 뉴스' 이미지
서두에서 던졌던 질문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젠틀몬스터는 결국 어떤 무기로 이 치열한 소송전을 이끌고 있을까요. 대중의 시선은 "디자인이 카피다, 아니다"에 쏠려 있지만, 이 사건의 법적 정체는 다음과 같이 요약됩니다.
젠틀몬스터는 문제가 불거진 특정 안경과 파우치 모델에 대하여 사전에 디자인권을 등록해 두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이 사건은 흔히 오해하듯 '디자인권 침해 소송'이 아닙니다.
젠틀몬스터가 내세운 사건의 주된 법적 근거는 다름 아닌 부정경쟁방지법 제2조 제1호 '자목'입니다.
즉, "형태가 갖춰진 날부터 3년 이내의 상품 형태를 모방하였는가, 아닌가"가 이 재판을 관통하는 1차적인 핵심 쟁점입니다.
양측이 첨예하게 다투는 전선은 결국 다음 두 가지 질문 위에 놓여 있습니다.
쟁점 1. 모방인가, 우연의 일치인가
젠틀몬스터 측
명백하고 의도적인 데드 카피(Dead Copy)다. 수사기관의 3D 스캐닝 결과 29종 모두 진품과 95% 이상, 그중 18종은 99% 이상 일치했다(지식재산처·대전지검, 2026.3).
블루엘리펀트 측
시각적으로 닮은 부분이 일부 존재하더라도, 이는 타사의 디자인을 모방한 것이 아니라 안경이라는 제품 특성상 발생한 우연한 일치다.
쟁점 2. 통상적 형태인가, 특이성 있는 형태인가 (자목의 보호 요건)
우리의 디자인은 시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반적인 안경 형태와 확연히 구분되는 고유한 '특이성'을 보유하고 있다.
비슷한 뿔테 실루엣의 안경은 과거부터 시장에 무수히 존재해 왔다. 누구나 자유롭게 변형해 만들 수 있는 '통상적 형태'에 불과하므로 독점적 보호 대상이 아니다.
법원이 검토할 자료는 비교적 정해져 있습니다. 양측이 제출하는 치밀한 디자인 비교표, 시장에 선행 존재했던 유사 안경 디자인의 역사적 사례, 그리고 소비자를 대상으로 한 인식 조사 등입니다. 이 사건은 2026년 3월 블루엘리펀트 대표가 부정경쟁방지법 위반으로 구속기소되며 형사재판으로 진행 중이고(2026년 7월 보석), 5월에는 특허심판원이 블루엘리펀트의 파우치 디자인등록을 무효로 판단했습니다. 1심 결과는 2026년 하반기 이후 나올 것으로 보입니다(2026년 10월 기준).
이 세기의 분쟁에서 일반 디자이너와 디자인 기업이 가져가야 할 시사점은 명확합니다.
지식재산처(옛 특허청)에 디자인권을 등록하지 않은 상품이라도 자목이나 파목을 통해 다툴 수 있습니다. 다만, 스스로 모든 것을 입증해야 하므로 그 부담이 몹시 큽니다.
자목은 '형태가 갖춰진 날부터 3년'이라는 엄격한 타임아웃을 가집니다. 분쟁이 터지기 전에 시제품 제작·공개 시점을 객관적으로 입증할 방안(SNS 게시, 공지증명 등)을 마련해 두어야 합니다.
분쟁 발생 시 마지막 방어선은 늘 동일합니다. "내 디자인이 동종 업계의 일반적이고 통상적인 형태와 어떻게 차별화되는가"를 논리적으로 정리한 자료가 승패를 가릅니다.
소송의 규모가 커질수록 법원을 움직이는 결정적 자료는 화려한 최종 결과물이 아니라, **'출시 시점의 흔적'과 '창작 과정의 땀방울'**입니다.
'Nano Banana AI 생성형 이미지'
이 사건이 디자이너에게 주는 실무적 교훈
이번 편의 핵심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자목(상품 형태가 갖춰진 날부터 3년 보호)과 가목(혼동 우려)의 요건을 모두 빗겨 가는 억울한 무단 차용 행위는 부정경쟁방지법 '파목'을 통해 구제받을 수 있습니다.
파목은 형태의 시각적 유사성(형식적 잣대)보다 행위 자체가 공정한 상거래 관행에 어긋나는지(행위의 부당성)를 포괄적으로 평가합니다.
세간의 오해와 달리, 젠틀몬스터는 문제가 된 안경의 디자인권을 등록하지 않았으며 현재 진행 중인 소송은 부정경쟁방지법(자목) 위반을 다투는 사건입니다.
미등록 디자인으로 법적 보호를 받으려면 '출시 시점의 객관적 증거'와 '동종 업계의 통상적 형태와 구분되는 특이성'을 입증하는 것이 관건입니다.
법정에서 가장 강력한 무기는 화려한 결과물이 아니라, 스스로 무엇을 어떻게 창작했는지 투명하게 보여줄 수 있는 '과정의 기록'입니다.
젠틀몬스터가 카피캣에 맞서는 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