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이너를 위한 부정경쟁방지법 안내❷ 가목과 에버그리닝 편

돌파전략 · 2026-08-19 · 펀더블 자금조달 인사이트

디자인권의 법정 보호 기간은 출원일 후 20년입니다. 그러나 이 20년의 기한이 만료된 이후에도 타 브랜드가 함부로 모방(카피)하지 못하는 독보적인 디자인들이 시장에 존재합니다. 과연 어떠한 법적 기제가 이러한 **사실상의 영구적인 보호**를 가능하게 하는 것일까요.

1974년에 출시된 한 디자인이 50년을 살아남은 방법

편의점 진열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항아리 모양의 바나나맛 우유 용기'를 떠올려 보겠습니다. 1974년에 최초로 출시된 이 용기 디자인은 세상에 나온 지 이미 반세기가 지났으며, 디자인권의 독점 보호 기간은 진작에 종료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타 경쟁 브랜드들은 동일한 형태의 용기를 함부로 만들어내지 못합니다. 과거 단지 모양의 유사 용기로 바나나우유를 출시한 경쟁사가 있었으나, 법원이 2005년 생산·판매 중지 가처분을 결정하면서 시장에서 퇴출된 바 있습니다(서울중앙지법). 이처럼 디자인권 만료 이후에도 막강한 보호막을 형성해 주는 법적 근거가 **부정경쟁방지법 제2조 제1호 '가목'**입니다.

20년이 지나도 베끼지 못하는 디자인의 비밀

부정경쟁방지법 제2조 제1호 가목의 규정 요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부정경쟁방지법 제2조 제1호 가목 (요약) 국내에 널리 인식된 타인의 성명, 상호, 표장, 상품의 용기·포장, 그 밖에 타인의 상품임을 표시한 표지와 동일하거나 유사한 것을 사용하여 타인의 상품과 혼동하게 하는 행위는 부정경쟁행위로 봅니다.

본 조항이 성립하기 위한 핵심 요건은 두 가지입니다.

주지성 획득

해당 디자인이 국내 시장에서 '널리 인식'되어 있을 것 (충분한 유명세 확보)

혼동의 우려

타인의 모방 행위로 인해 소비자가 상품의 출처(어느 브랜드의 제품인지)에 관해 혼동을 일으킬 가능성이 존재할 것

이 두 가지 요건을 모두 충족한다면, 비록 지식재산처(옛 특허청)에 등록한 디자인권의 보호 기간(20년)이 만료되었을지라도 '가목'을 통해 지속적인 제재와 보호가 가능해집니다. 특히 가목에 의한 보호는 **법정 기한의 상한선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즉, 해당 디자인의 유명세와 식별력이 시장에서 유지되는 한 법적 보호 역시 영구적으로 지속됩니다.

가목의 정의와 핵심 요건

자목과 가목의 유기적인 시간 분담

전편에서 다룬 '자목'과 이번 편의 '가목'은 시간 축을 자연스럽게 나누어 디자인을 보호합니다.

출시 후 0~3년

'자목'에 의한 자동 보호 기간입니다. 아직 디자인이 유명세를 얻지 못한 초기 단계라 하더라도 무단 모방을 즉각적으로 막아냅니다.

출시 후 3년 이후

자목의 3년 유효 기간이 종료됩니다. 단, 그 3년의 시간 동안 해당 디자인이 시장에서 충분히 유명해져 주지성을 획득했다면, 자연스럽게 '가목'으로 바통이 넘어가며 보호가 지속됩니다.

디자인권 존속 중(출원 후 20년 이내)

디자인권을 출원하여 등록받았다면, 기간 동안 가장 강력하고 확실한 독점적 보호를 받습니다.

디자인권 만료 후

디자인권이 만료되어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공유 영역으로 넘어갈 위기에 처하지만, 가목의 요건을 충족한다면 가목 단독으로 무기한 보호를 이어갑니다.

'Nano Banana AI 생성형 이미지'

single

글로벌 풋웨어 브랜드 크록스(Crocs)의 대표 모델인 '클로그(Clog)' 신발은 2000년에 오리지널 디자인이, 2009년에 성인용 라인이 각각 출시되었습니다. 두 라인 모두 디자인권과 관련 특허의 법정 보호 기간이 이미 종료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렴한 카피 제품들이 시장을 완전히 점령하지 못하는 데에는 두 가지 강력한 법적 장치가 작동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가목의 적용

크록스 특유의 구멍 뚫린 실루엣과 형태는 이미 국내외 소비자들에게 널리 인식되어 있으므로, 이를 무단으로 차용할 경우 출처 혼동 행위(가목 위반)에 해당합니다.

입체상표권 등록

크록스는 신발의 '입체적 형상 자체'를 상표권으로 등록받았습니다. 상표권은 10년마다 갱신이 가능하므로, 갱신만 지속한다면 사실상 영구적인 권리를 누릴 수 있습니다.

이처럼 디자인권이나 특허권의 보호 기간 만료를 앞두고, 다른 종류의 지식재산권(특히 상표권 및 가목)으로 보호 권한을 이어받아 사실상 영구적으로 디자인을 보호하는 고도의 전략을 실무에서는 **'에버그리닝(Evergreening)'**이라 부릅니다.

크록스(Crocs), 디자인권 만료 이후의 방어 전략

주변에서 발견되는 에버그리닝 사례들

시각을 넓혀 관찰해 보면 성공적인 에버그리닝 사례는 도처에 존재합니다.

아디다스(adidas)의 삼선

신발 측면을 가로지르는 세 줄 패턴이 입체 및 결합 상표로 등록되어 있습니다.

하리보(HARIBO) 골드베렌

곰 모양의 젤리 형상이 입체상표로 등록되어 타사의 모방을 원천 차단합니다.

티파니 블루(Tiffany Blue)

특유의 민트색에 가까운 색채가 색채상표로 등록되어 브랜드 자산으로 보호받습니다.

'아디다스' 삼선 모자

하리보 골든베렌 (좌), 티파니 블루 색채상표(우)

split

이들은 모두 디자인권이 보호하던 초기 20년의 장벽을 지나, 상표권과 가목의 연쇄적 보호를 통해 살아남은 성공 사례들입니다.

디자이너가 에버그리닝을 노리기 위한 필수 요건

현실적으로 시장에 출시된 모든 디자인이 에버그리닝의 수혜를 입을 수는 없습니다. 가목 보호의 대전제가 "국내에 널리 인식될 것"이므로, 막대한 마케팅 투자와 높은 시장 점유율을 통해 확고한 유명세를 확보한 디자인에 한해서만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다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디자이너가 반드시 의식해야 할 중요한 원칙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한 디자인의 핵심 요소를 시즌마다 무분별하게 변경하지 않고 일관되게 유지하는 것'**입니다.

외관이 매번 극적으로 바뀌면 소비자의 뇌리에 고유한 식별 자산으로 누적되지 못합니다. 디자인의 뼈대가 되는 특정한 패턴, 황금 비율, 시그니처 색채, 고유의 실루엣 등을 시즌이 바뀌어도 꾸준히 유지할 때, 그것이 훗날 가목과 상표권을 지탱하는 든든한 토대가 됩니다.

실무적으로 가장 강력하고 틈이 없는 보호 전략은 '가목'과 '입체상표·색채상표'의 결합입니다. 물론 가목만으로도 법적 쟁송이 가능하지만, 지식재산처에 상표가 정식 등록되면 다음과 같은 압도적인 장점들이 추가됩니다.

권리의 존재와 발생 시점이 국가가 발급한 '등록증' 하나로 명쾌하게 입증됩니다.

쿠팡, 네이버 등 온라인 유통 플랫폼의 지식재산권 침해 신고 시스템을 곧바로 가동하여 모방품을 신속히 차단할 수 있습니다.

분쟁 과정에서 내 디자인이 "얼마나 유명한가(주지성)"를 굳이 힘들게 입증하며 다툴 필요가 없어집니다.

10년 단위의 갱신 절차를 통해 사실상 무기한 보호 체계를 구축할 수 있습니다.

크록스의 클로그, 코카콜라의 컨투어 보틀(유리병), 페레로 로쉐의 금박 포장 등 전 세계를 호령하는 글로벌 브랜드들이 예외 없이 이 결합 전략의 수혜자들입니다.

가장 완벽한 방어선, 가목과 상표권의 결합

이번 편의 핵심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디자인권의 법정 보호 기간은 출원일 후 20년으로 만료되며, 그 이후의 무단 모방 방어는 부정경쟁방지법 '가목'이 담당합니다.

가목 보호가 성립하기 위한 핵심 요건은 국내에서 널리 인식될 것(주지성), 그리고 소비자의 혼동 우려가 있을 것입니다.

초기 자목(0~3년 보호)에서 출발하여, 주지성을 획득한 이후 가목(무기한 보호)으로 자연스럽게 이행하는 흐름을 설계하면 권리 보호의 공백을 최소화할 수 있습니다.

가목의 요건을 충족한 상태에서 입체상표 및 색채상표를 결합하는 것이 가장 완벽한 '에버그리닝(Evergreening)' 전략입니다.